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5세 (문단 편집) == 갓난아기 왕 == 부왕인 [[제임스 4세]]가 '''[[플로든 전투]]'''에서 전사하자 '''1살 5개월'''의 아주 어린 나이로 척박한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.[* 참고로 같은 케이스인 잉글랜드 [[랭커스터 왕조]]의 제3대 왕인 [[헨리 6세]]는 생후 9개월만에 왕이 되었다.] 제임스 4세의 유언에 의하면 모후인 [[마거릿 튜더]]가 재혼하기 전까지 새 국왕의 섭정이 되도록 되어있었으나 아무래도 그녀가 야심만만한 헨리 8세의 친누나였기 때문에 잉글랜드에 악감정을 품은 친프랑스파 스코트인들은 그녀 대신 올버니 공작 존을 적임자로 보았다. 존은 [[제임스 3세]]의 동생이었던 알렉산더의 아들로, 신왕 제임스 5세 다음으로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다. 존의 아버지인 알렉산더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바다 건너 프랑스로 망명해 존이 아기였을 때 죽었다. 이후로 존 스튜어트는 쭉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었다. 그런데 마거릿 튜더가 갑자기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와 재혼하면서 친프랑스파 세력의 목소리가 커졌고 결국 [[1515년]] 올버니 공작 존 스튜어트가 프랑스군을 이끌고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실권을 장악했다. 이는 스코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굳건한 동맹을 상징했고, 이 프랑스-스코틀랜드 연합군이 잉글랜드로부터 국경지대를 방비하는데 성공하면서 올버니 공작 존은 능숙하게 스코틀랜드를 통치하게 되었다. 그 후 마거릿 튜더는 올버니 공작 존이 프랑스에 가 있는 틈을 노려 아란 백작 등의 친잉글랜드파 귀족들과 함께 [[1524년]] 쿠테타를 일으켜 올버니 정권을 종식시키고, 제임스 5세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친정을 선포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